너의 영감을 마음껏

너의 영감을 마음껏아이슬란드 | 스카가스트론드 | 안수향 도시가 예술을 품는 방법 아이슬란드 서북쪽 끄트머리의 작은 도시. 나는 이 도시에서 '아티스트'라는 거창하고 쑥스러운 이름표를 달았다. 세계 각국에서 찾아 드는 아티스트들이 몇 달이고 머무는 곳. 처음엔 생경하고, 살아보면 사랑스러운 아이슬란드의 예술 도시, 이곳의 이름은 '스카가스트론드(Skagaströnd)'다. 아이슬란드의 총인구는 약 34만, 화산이 포함된 험준한 내륙 지형과 어업 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 덕분에 대부분 도시가 바닷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수도는 레이캬비크(Reykjavik), 제2의 도시는 아쿠레이리(Akureyri)다. 아이슬란드 서북쪽에 위치한 스카가스트론드는 차를 타고 아쿠레이리에서 대략 2시간 정도면 갈 수 있다. 아이슬란드 서쪽 바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작은 도시. 딱히 관광할 만한 거리는 없고 덕분에 주민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한다. 3개월 전, 나는 이곳에 있는 한 '아티스트 레지던시(Artist Residency)'에 활동 계획서와 내 포트폴리오가 담긴 지원서를 보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예술가들에게 생활 공간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가 운영되고 있다.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이 한정되어 있어, 나름대로 경쟁률이 있다. 다행히 나는 메일을 통해 두 달 동안 머물러도 좋다는 답변을 받았다. 평생 한 번 올 일이 있을까 싶은 이 작은 도시에서 다른 열 명의 친구와 동고동락을 시작했다. 내가 머무는 스카가스트론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현재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아티스트 레지던시 중 하나다. 지난 십 년 동안 수십 명의 아티스트가 적게는 한 달에서 많게는 몇 년을 이곳에 머물다 갔다. 그러는 동안 마을도 조금씩 바뀌었다. 스카가스트론드에 살던 이들이 하나둘 더 큰 도시로 떠난 후 주인을 잃고 비어있던 집 몇 채는 아티스트들의 숙소가 됐다. 대구를 가공하던 공장은 아티스트들이 모여서 작업과 전시를 할 수 있는 스튜디오로 변신했다. 설립자인 비키와 매니저인 케린, 조지나가 애쓴 덕분이다. 이들은 단순히 머물고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물리적 지원 외에도 스카가스트론드 지역공동체와 예술가들의 유대를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크고 작은 행사가 있을 때면 아티스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필요하면 아티스트가 지역 행사의 주체가 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그런 각자의 노력 덕분에 예술가들은 지역사회에서 환영받는 존재가 됐다. 예술을 나누고 얻은 것들 스튜디오는 내부가 넓고 탁 트인 철제 건물이다. 과거에는 대구 가공공장이었다. 스튜디오에선 다른 아티스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작업대를 놓고 작업할 수 있다. 스튜디오 한쪽에는 작업에 필요한 각종 도구가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스튜디오에서 산 것들도 있지만, 이곳을 다녀간 아티스트들이 두고 간 것도 제법 많다. 작업은 자율적이다. 내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주변을 산책하거나 생각하는 행위 그 무엇이든 괜찮다. 어떤 아티스트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스튜디오를 왔다가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아티스트는 출퇴근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누구는 이른 아침을 좋아하고 나처럼 저녁과 밤을 선호하는 사람도 몇 있다. 모두 다 같은 시간에 모이는 날은 드물다. 작업에 집중할 땐 스튜디오가 조용하지만, 점심시간이나 저녁 시간에는 소파에 모여 샌드위치나 도시락을 먹으며 시끌벅적하게 수다를 떤다. 매월 말 스튜디오는 분주해진다. 아티스트 스튜디오는 자율적 참여라는 전제하에 이곳에 머무는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공개하는 자리를 갖는다. 오픈 스튜디오. 함께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아티스트에게는 물론 스카가스트론드 시민과 이곳을 찾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꼭 완성된 작품이 아니어도 괜찮다. 아티스트가 구상 중인 작품 콘셉트만 프레젠테이션하는 것도 좋다. 그저 스카가스트론드에서 지내며 얻은 생각과 영감을 나누면 그만이다. 나와 함께 지내던 10명의 예술가 모두 오픈 스튜디오에 참여하기로 했다. 브로슈어에 들어갈 이미지는 타일러가. 디자인은 토마스가 맡았다. 나는 그날의 오픈 스튜디오를 영상으로 남기는 역할을 담당했다. 오픈 스튜디오는 회화나 설치미술, 사진 전시는 스튜디오에서 감상과 대화로 진행된다. 스카가스트론드 사람들은 대부분 가족과 함께 오픈 스튜디오를 방문한다. 오다가다 종종 마주친 얼굴도 있었고, 휠체어를 타고 오는 사람도 있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남짓 된 아이를 품에 안은 부부와 남아공 출신인 갈라의 친구가 되어 매일 이곳을 방문하던 초등학생들도 와주었다. 예술에 대해 다양한 지식이 필요하지 않은 자리였다. 그저 예술을 나누는 것으로 충분했다. 아티스트가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면, 관람자들은 자신들의 감상을 말한다. 관람자들은 하나같이 멋진 감상들을 쏟아냈다. 때로는 얘기하지 않아도 아티스트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내고 생각지 못했던 점을 해석하기도 했다. 오픈 스튜디오는 아티스트는 작품을 나누고, 관람자를 통해 또 다른 영감을 얻는 자리였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일몰 저녁에는 미국의 방송사와도 자주 작업을 하는 단편 영화감독 제이미의 영상 감상회가 열렸다. 그녀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아주 어릴 때 입양되어 미국인 부모의 손에 자랐다. 나를 만날 때마다 서툰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한다. 최근에는 "소주 주세요"라는 말도 배웠다며 자랑했다. 영상은 얼마 전 짧게 다녀온 아이슬란드 북부의 풍경으로 가득했다. 영상은 제이미의 평소 성격과 닮아있었다. 고요하고도 은연중에 드러나는 주변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제이미의 영상 속 아이슬란드는 어리고 불규칙적이며 희망적이었다. 제이미 다음으로 시인이자 음악가인 일라이아의 시 낭독과 안무가인 아델라의 야외 공연이 있었다. 평소 털털하고 장난기 넘치는 성격 덕분에 인기가 많은 아델라는 관찰력이 좋아 어떤 대상이든 잘 따라 했다. 한번은 바닷가에서 주워온 홍합 껍데기를 의인화시키며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춤을 출 때만큼은 사뭇 진지하다. 마치 인어를 표현한 듯한 옷을 입은 아델라는 어느새 이야기 속 주인공으로 바뀌어 있었다. 무대는 스카가스트론드 항구가 잘 내려다보이는 작은 언덕. 배경은 일몰 직전의 하늘이다. 음악은 없다. 이곳의 공기와 관람자의 숨소리가 리듬이 되고 멜로디가 됐다. 대사도 없고 그저 몸짓과 표정으로만 진행되는 짧은 이야기. 나는 아델라의 이야기에 푹 빠져 결국 마지막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 공연을 보았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아델라 역시 여운이 길었던지 저무는 노을 쪽으로 웅크린 몸을 오래도록 두었다. 오픈 스튜디오에서 스카가스트론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작은 도시가 예술을 통해 재탄생 되는 과정을 목격한다.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예술가와 대화하며 새로운 세계의 탄생에 참여한다. 마을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하며 오늘의 경험에 대해 대화를 하며 나눌 것이다. 매월 열리는 오픈 스튜디오는 예술과 예술가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자연스레 지역사회는 예술가를 환대하게 되고, 나아가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예술과 지역사회의 선순환적 연결고리. 공연이 끝난 뒤 아델라는 추운 날씨 탓에 바들바들 떨었다. 시인 일라이아는 그에게 재킷을 입혀줬다.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일몰이 끝나고 있었다. 나의 친구들 나는 호주인 토마스, 독일인 수잔나와 함께 집을 쓰게 되었다. 이곳엔 아티스트가 머물 수 있는 총 세 채의 집이 있다. 조합에 따라 집의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어떤 집은 매우 조용하고 어떤 집은 매일 파티가 열린다. 아티스트 레지던시 생활 초반에 심한 감기몸살에 걸렸었다. 사려 깊은 토마스와 수잔나는 고맙게도 우리 집을 조용한 집으로 만들어주었다. 물론 평소 우리의 성격 탓도 있을 테지만. 세 채의 집 중에 우리 집은 조용한 집이었다. 스카가스트론드는 하루에 딱 한 번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 그나마 노선도 수도인 레이캬비크와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아쿠레이리로 향하는 두 개가 전부다. 어느 날이었다. 토마스는 굉장히 심각한 얼굴로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주제는 술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맥주를 포함한 모든 주류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토마스가 알아버린 것이다. 토마스에겐 무척 중요한 문제였다. 술을 잘 못 하는 나는 옆에서 참관만 했다. 이곳에서 본 토마스의 가장 진지한 얼굴이었다. 회의 끝에 정예 요원들을 선발했다. 요원들은 다음날 우르르- 시내로 가는 차편을 타고 도시로 나갔다. 스카가스트론드로 돌아오는 버스가 저녁에 단 한대뿐이었기에, 그들은 단지 술 때문에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왔다. 모두 아이슬란드 맥주인 '바이킹 맥주'를 한 상자씩 들고 돌아왔다. 그날 이후 토마스는 이전보다 자주 집에서 밥을 먹는다. 물론 음악과 맥주와 함께. 어제는 생닭 한 마리를 손질하더니 타코를 만들어 먹었다. 토마스에게 술은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음료인가 보다. 자연스럽게 한 집을 쓰며 하우스메이트끼리 친해지기도 하지만 그 밖에 아티스트 레지던시는 아티스트들간 자연스러운 만남을 위해 몇 가지 공식 행사를 하기도 한다. 포틀럭 파티(Potluck Party)나 아티스트 토크, 혹은 양몰이나 승마, 빙산 구경 등 비정기적인 아이슬란드 대소사에 참여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한다. 이런 행사에서는 예술가라는 수식어 안에 숨겨진 각자 본연의 인간적인 모습들을 마주할 수 있다. 이 자리를 통해 대개 성향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정서적 교류를 많이 나누고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당연히 협업의 물꼬를 트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꼭 예술이 아니어도, 언어 교환(Language Exchange)이나 이것저것 배울 수 있는 작은 클래스 오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요가를 오래 한 메들린은 몇 달 전부터 이곳에 머물면서 무료로 매주 요가 수업을 하고 있다. 아티스트 레지던시에 머무는 아티스트들은 물론이고, 동네 주민 몇 명도 요가 수업을 듣는다. 아델라는 무용 수업을 하고, 환경운동에 관심이 많은 수잔나는 마을의 과학자와 주변의 환경오염에 관해 토론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어느 졸업생의 금의환향 이곳의 매니저 케린에게 공지 메일이 왔다. 메일 내용은 아티스트 레지던시 졸업생 하나가 귀환한다는 것이었다. 귀환하는 졸업생의 이름은 드류 크라스너(Drew Krasner), 뉴욕 브루클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재즈 작곡가이자 40명의 빅밴드를 이끄는 수장이다. 그는 몇 년 전 이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머물렀다. 그런 드류가 '아파트먼트 세션스(Apartment Sessions)'라는 프로젝트의 음반 제작을 위해 자신의 빅밴드 멤버 모두와 스카가스트론드를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특히 아이슬란드 전역에서 이루어질 녹음 작업을 스카가스트론드의 한 교회에서도 할 예정이라는 내용이었다. 녹음이 끝나면 스카가스트론드 사람들을 위해 작은 콘서트도 열 계획이란다. 그러니 그들의 음악을 듣고 싶은 사람은 언제든 교회로 가면 된다는 내용도 덧붙여 있었다. 드류와 빅밴드가 도착한 날. 케린은 스카가스트론드의 인구가 오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스카가스트론드의 인구는 대략 470명 정도. 하루 만에 인구의 10%에 가까운 사람들이 찾아왔으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오전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던 우리는 소식을 듣고 교회로 자리를 옮겼다. 나는 백발이 잘 어울리는 70대 독일인 아티스트 에블린과 함께 교회 2층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오후 내내 조용히 그들의 녹음 작업을 지켜보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40명이나 되는 재즈 빅밴드의 공연을 마주했다. 그것도 스카가스트론드의 작은 교회 안에서 말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일과를 마친 동네 사람들도 가족과 함께 조용히 교회 의자에 앉았다. 드류와 빅밴드는 폭포 밑에서 녹음을 하기도 하고, 용암대지나 거리에서 곡을 연주하며 기록들을 계속 남기고 있다고 했다. 특히 이 교회는 드류가 이곳에 머물 때 영감을 얻었던 장소라고. 정통 재즈 연주곡 외에도 아카펠라로 이루어지는 곡도 있었다.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웅장한 공간은 밴드의 음악을 만나 황홀한 음계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예술이었다고 드류는 지난 몇 개월 동안 아이슬란드에서 지내며 받은 영감을 스스로 발전시키고 발현하려 했단다. 그리고 자신이 받은 영감을 다시 아이슬란드에 돌려주는 중이었다. 굉장히 고귀하고 아름다운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과정 자체가 예술이라 생각했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는 에블린은 행복하고 뭉클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 몇 번을 속삭였다. 물론 그녀의 문장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에볼린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에볼린의 표정마저 드류의 예술 안쪽에서 지어지고 있었고, 나 역시 그 속에서 함께 춤추고 있었으니까. 공연이 끝나고 다시 숙소로 돌아가는 길.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교회에서 2분 거리에서 지내는 에블린은 우산이 없어 당황했다. 마침 우산이 있던 나는 에블린을 배웅했다. 그녀는 나긋한 독일어로 내게 말을 했다. 무슨 말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아마 고맙다는 말일 테다. 저녁 인사를 나누고 그녀와 헤어졌다. 진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마을 곳곳에는 버려진 것들을 활용한 예술작품들이 이곳에 머물다 간 아티스트들 대신 서 있다. 비를 잔뜩 머금은 구름이 움찔댄다. 오늘 밤에는 비바람이 제법 불겠다. 나는 얼른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예술 작품과 구름과 귓가에 맴도는 에볼린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함께 어우러진다. 그렇다. 스카가스트론드에선 나를 둘러싼 그 모든 것이 예술이었다. 글│안수향사진│안수향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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