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다 태워 SHALL WE DANCE

밤을 다 태워 SHALL WE DANCE워싱턴│미국│박미희 바닥에 달라붙어버린 현재를 벗어나고 싶었기에 완전히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질척한 연애가 끝난 후에 아주 다른 사람을 만나겠다고 마음먹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어쨌든 내가 지금부터 하려는 건 낯설고 자극적인 춤에 관한 여행 얘기다. Blue Moon Billie Holiday 이른바 몸치인 내게 사실 딴 세상 이야기처럼만 생각해왔던 '춤'은 '음악'과 가까운 사이였다. 동요로 시작했던 음악은 장르만 바뀌었을 뿐 늘 함께였고, TV 속 사람들은 매일같이 춤을 추었다. 그런 면에서 공짜로 주어진 몸을 악기로 삼아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밑져봐야 본전 같은 느낌이다. 지구를 정복할 댄서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었던 것도 아니었으니까. 단지 낯설었던 것은 교과서에서도 보기 힘들었던 'Jazz'라는 글자뿐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세뇌된 것인지 어두컴컴한 바에 앉아 허세를 떨면서 들어야 할 것처 럼 느껴지던 장르. 스윙 댄스(Swing Dance)는 스윙 재즈(Swing Jazz)로부터 출발한다.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 베니 굿맨(Benny Goodman),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글렌 밀러(Glenn Miller),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 아티쇼(Artie Shaw)와 같은 아티스트의 이름을 들어본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내가 이미 몇몇 영화에서 스윙 댄스(Swing Dance)를 목격했으며, 가끔은 스윙 재즈(Swing Jazz)도 들었을 거라 했지만 잘 와 닿지 않았다. 일단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몸뚱이를 해결하는데 급급했으니까. 재능이 없다는 생각이야 벌써 했지만, 거울에 비친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똑바로 마주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했다. 볼썽사나운 모양새는 됐다 치고. 이렇게 자신에게 집중했던 게 언제였던가? 이런저런 역할의 굴레와 빈약한 통장잔고에 매여 붐비는 지옥철을 견딘다. 우리는 저마다 꽃이라고,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면 생명력이 빛난다고 들었는데, 꺼져가는 촛불처럼 시름시름 앓으며 하루가 저문다. 퇴근길에 듣는 몇 곡의 노래만으로는 위로가 되지 않는 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춤은 그렇게 구겨두었던 스스로를 음악 위에 꺼내놓는 작업이라고 들었다. 비록, 마음이 표현하고 싶은 것과 몸이 그려내는 것의 차이가 클지라도, 용기를 내서 손을 내밀면 춤을 통해 서로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배경에 놓인 모든 것을 지운다. 지금부터 3분, 음악 속에 나와 파트너만 오롯하게 빛나는 시간이다. 다양한 음악과 파트너를 만나 매번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때로는 격렬한 토론이 벌어지거나, 유머가 넘치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가 넘실거리기도 한다. 전설적인 댄서 프랭키 매닝(Frankie Manning)이 3분 간의 로맨스(series of three-minute romances)라 말한 것도 그런 맥락이 아닐까. 흥미로운 음악 위에 춤을 얹어 고된 하루를 잊었다는 스윙 시대(빅밴드 형태로 연주하는 스윙 음악이 인기를 끌었던 시기로, 대략 1930 - 40년대를 일컬음)를 생각하며, 야근의 피로나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 미래에 대한 불안, 막연히 점쳐지는 이별의 두려움 같은 것들을 흘려 보낸다. 여기, 춤이 지나가고 있다. Take the 'A' Train Duke Ellington 유튜브 덕분에 다른 나라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듣는 시대라지만, 아무래도 채워지지 않는다. 지구 구석구석 저마다 다른 무대에 서있는 수많은 댄서가 궁금하다. 동영상에 담긴 연주를 직접 듣고 싶기도 했다. 스윙 재즈가 태어난 곳의 사람들은 어떻게 즐기고 있을까. 나와 다르게 살아온 이들은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춤을 배우며 생겨버린 이런 호기심들을 꾹꾹 눌러 담고 있다가 어느 날부터 짐을 싸기 시작했다. 가자. 스윙 재즈가 울려 퍼지는 곳으로 가서 직접 만나자. 동행의 숫자가 0에 가까울수록 커지는 자유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혼자보다는 여럿이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여행. 서로 다른 취향이나 사정으로 인한 피로는 함께 누리는 즐거움으로 잊히고, 비루한 몸뚱이로 음악 속을 헤매던 순간만이 남는다. 지난번에는 시골이라 가는 길이 좀 험난했는데, 이번에는 도시다. 매년 봄, 미국 워싱턴DC에는 다양한 밴드가 연주하는 스윙 재즈를 들으며 춤출 수 있는 이벤트가 열린다. 정오부터 다음 날이 밝아올 때까지 빽빽하게 짜인 프로그램을 얼마나 즐길지는 각자의 문제. 올해는 15주년을 기념하여 15개의 밴드가 참가한다는 데, 상상만 해도 입이 절로 찢어진다. 최고의 연주를 즐기며 춤추는 이벤트다운 밴드 라인업까지, 마음은 이미 한껏 들떴다. 빅밴드의 파워와 소규모 밴드의 다양한 스타일을 맛볼 수 있다는 데, 끌리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은 곡을 연주해도 밴드에 따라 음악은 달라지고, 밴드 구성이 비슷해도 리더가 누구인가에 따라 또 새로운 곡이 탄생한다. 연주자와 댄서는 서로에게 영감을 받는다. 만약 똑같은 곡을 연달아 두 번 연주한다고 해도 두 곡은 완전히 다르게 느껴질 것이라 상상하니 짜릿할 수밖에. Jumpin' at the Woodside Count Basie 어둠이 내린 숲 속의 연회장은 스윙 시대의 복식을 따라 잔뜩 힘을 주고 나타난 이들부터, 격식 없는 옷차림의 사람들까지 다양한 얼굴들로 북적였다. 마룻바닥 위로 들고 나는 사람들의 물결이 일렁거린다. 누군가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 위해 수건을 허리춤에 꽂아두었다. 무대 위의 댄서들이 하나의 음악을 여러 개의 드라마로 만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려내는 제 각각의 표정과 몸짓을 바라보고 있으니 텅 빈 마음이 채워지는 기분이다. 한창때의 육체적 능력을 아낌없이 쏟아붓는 댄서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서툴게 발을 내딛는 꼬마 숙녀. 어느 노부부의 몸짓에서는 그들의 젊은 날이 그려지기도 했다. 드물게는 조금 다른 이들도 만날 수 있었다. 한쪽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댄서는 너무나 멋진 춤을 추었다. 어떤 이는 휠체어에 앉은 채로 한 손으로는 바퀴를 움직이고, 다른 손으로는 파트너의 손을 잡는다. 사람들은 이웃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그렇게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고 있었다. 밴드와 댄서가 서로를 어느 정도 익히고 나니 분위기가 점점 뜨거워진다. 사람들의 심박수가 올라가고, 밴드의 연주에도 가속이 붙었다. 마치 약속한 것처럼 댄서들은 무대 중앙에 둥그렇게 원을 만들고, 눈치껏 차례로 나와 자신들의 춤을 선보인다. 박수를 치며 구경하는 사람도, 중심에서 자신을 한껏 뽐내는 사람도 흥이 난다. 밴드의 연주가 절정으로 치닫자,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함성과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곡이 끝날 때까지 환호성을 지르거나 각자의 춤을 춘다. 밴드의 연주가 끝날 때쯤이면, 우리 모두는 100미터 달리기를 끝낸 것처럼 심장이 펄떡거린다. 서로를 마주 보며 웃는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마음. 낯선 곳의 음악과 춤에서, 이색적인 풍경을 마주했을 때 마음에 차오르는 그 무엇을 만난다. 오래도록 잊히지 않고, 또다시 떠날 마음을 먹게 만드는 벅찬 감정이 이곳을 가득 채워 울컥거린다. On the Sunny Side of the StreetElla Fitzgerald 밤새도록 한바탕 달린 후에 쓰러져 자고 일어나니 해가 쨍쨍하다. 벚꽃이 만개하는 봄날의 분위기란 어느 나라건 비슷한 것 같았다. 늘상 단정하게 느껴지던 미국의 수도 역시 생기가 넘쳤다. 햇살도 바람도 참 좋은 봄이다. 이제 서울에서는 너무나 귀해진 파란 하늘까지. 누구나 마음껏 즐겨도 좋다며 사람들을 부르고 있다. 샌드위치를 들고 무대 바깥쪽에 앉아 구경꾼이 됐다. 무임 승차를 허락받은 시민들과 관광객들까지, 좋을 대로 그 시간을 즐긴다. 지난밤에 알게 된 얼굴도 여럿이다. 나의 머리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던 이를 만났다. 기분 좋은 칭찬을 주고받은 기억이 있으니, 더더욱 반가울 수밖에. 며칠 동안 오다가다 마주치기도 하고, 춤도 추다 보니 이야기가 하나, 둘, 쌓여간다. 이 짧은 주말을 위해 비행기를 열네 시간 넘게 탔냐며 과격한 리액션을 보이는 파란 눈동자. 너랑 춘 춤은 정말 재미있었었다고, 네가 얼마나 음악과 춤을 사랑하는지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하자 말갛게 웃는다. 어떻게 춤을 배우게 되었는지, 어떤 뮤지션을 좋아하는지 말하는 표정에는 행복함이 묻어난다. 춤은 배운 적이 없지만 스윙 재즈를 너무 좋아하고, 밴드를 직접 보고 싶어서 여기까지 왔다는 이들의 뜨거운 눈빛도 참 좋았다. 서로의 나라에서 열리는 이벤트를 이야기하며 페이스북 친구를 맺거나 다음을 기약한다. 우리가 계속 춤을 추고 있는 한, 실제로 어딘가에서 다시 만날 확률은 아주 높다. 우리들은 같은 것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서로에게 우호적이었다. Flying HomeLionel Hampton 그곳에는 익숙한 나와 숨겨둔 내가 함께 있었다. 무대 의상을 여러 번 갈아입은 무용수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하고, 음악에 이끌려 의외의 동작을 하고선 짜릿함을 느끼기도 했다. 감춰두었던 나의 모습이 그렇게 조금씩 새어 나왔다. 음악이, 파트너가, 내가, 나를 나답게 만든다. 우리 모두는 같은 동작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춤을 추었다. 각자의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호응해주었다. 여전히 몸을 쓰는 데는 썩 재주가 없지만, 매번 새롭게 들리는 음악, 댄서들과의 교감을 상상하면 마음이 들썩거린다. 일상에서, 가끔은 이렇게 먼 곳에서 나를 깨닫는다. 춤에 다가선 후로, 회사와 집을 찍으며 남의 것처럼 버려두었던 자신에게 집중하게 되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디가 잘나고 못났는지 생각하는 시간이 늘었다. 나의 별난 구석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 안에 갇힌 이야기를 부드럽게 풀어내고 싶다. 결국 이거였다. 주변의 시선에서 한 걸음 더 자유롭게, 나답게 춤추며 사는 것! 글 │박미희사진 │박미희 artravel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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